斷想/身邊雜記

인연

Q1 2009. 12. 11. 13:54
오늘 최목사님과 같이하는 마지막 밀알모임 나가서 불현듯 신승진 목사님이 오버랩 되었다.
언제든지 기회가 있을꺼라고 여기고 미뤄두면 어떻게 되는지...

임자형랑 함형이 억지로 등 떠밀어 목자 후보에 이름 올라가서 목사님과 하게 된 면담.
그 땐 참 뭣모르고 용감했지, 인트로도 없이 그냥 인사하고 입열어서 바로 단칼에 저 안 할 껀데요, 억지로 등 떠밀려 왔다고 사실대로 말했으니... 보통 안하겠다고 하면 30분 설득당하고, 뒤에 면담 대기자들 대기 시간 늘어난다고-_- 23기 전모 선배가 제발 그냥 한다고 대답하라고 시켰으나-_- 너무 솔직했던 탓일까, 몇 말씀 안 하시고 기도 받고 나왔었다. 사실, 그 면담할 시점인 2학년 2학기가... 여러 이유가 겹쳤지만. 그 때부터 3학년 두학기 포함 3학기 무지 먼가 힘들었던 시절이라-_-

물론 그 때 안 한 덕에 - 그러나 목자 교육 등은 선배들한테 끌려가서 동기들 받을 때 받았더랬다;;; (내 청년부 생활이 먼가 순서와 타이밍이 좀 뒤죽박죽이긴 하다-_-; 26기부터 가능인 수련회 때 조장을 27기인데 막 하게 되질 않나) -의성이형 목장에서 수아랑 알게 되고, 29기들, 송영지, 현은정, 김건우(?, 이젠 이름도 기억 안나네) 알게 되고. 뭐 영지는 나중에 내가 목자할 때 양도 했고, 같은 학교다녔고 해서... 얜 샌디에고가서 잘 살구 있나. 3학년 2학기엔, 밥상누나랑 뭐 그런 목자들이었던 거 같은데, 담목인 경완누나 밖에 기억이 안나;; 의성이형 대타로 윤범이형 알게 되고... 결국 윤범이형이 경완이 누나 3청 밑으로 들어가서, 김윤경이랑 민아누나, 연진이 누나를 비롯해 3청에서 목자 시작하며 알게된 사람들. 아, 그 때 같이 목자 하던 정선이 통해서 수진이 누나, 윤이까지.. 여러 사람 알게 되도록 이어진 것 같은데.. 그 때 다른 노선 탔으면 또 다른 교회 공동체 내 인맥으로 흘러 들어갔겠지. 그 때 억지로 목자 하게 만든 경완 누나한텐 감사하고 있긴 함. 안 그랬으면 또 1년 도망쳤을 듯.

그리고 결국 2002년 12월에, 경완누나한테 다시 등떠밀려 목자를 하게 되었다.
그래서 나간 내 첫 목자모임이 신승진 목사님이 교회 새로 개척하러 나가시기 전 마지막 목자모임이셨다. 
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면, 그 때 좋은 말씀을 들을 기회,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이 남았는데... 2001년 10월에 내가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, 이런 선택을 안 했겠지.

결국 올해 10월에 야구 끝나면으로 미뤄뒀다가,
좋은 말씀 들을 기회, 목사님과 좋은 인연을 만들어갈 기회를 놓친게 다시 아쉬움으로 다가온다.

하필 또 오늘 본문이 오병이어 말씀이라.
신목사님이 지으신 우리 5.2.드림 공동체의 의미가 5병2어를 드림이었고, 52주를 드림이었고, 1년 52주 내내 하나님을 꿈꾸는(dream) 공동체였던걸 생각하면, 오늘 신목사님이 다시 안 떠오를 수가 없었다.

이정택 목사님께 5년여 긴 시간 배웠지만, 그 때 신 목사님께도 좀 배웠더라면, 하는 아쉬움이 (물론 3년간 주일 예배 설교는 들었다만.) 진하게 묻어났는데... 목자모임에서 목사님께 직접 성경공부 배우는 은혜의 자리를 스스로 걷어찬...

결국 보스턴에 와서 첫학기에도, 그런 은혜의 자리에 나갈 기회를 또 놓치고 말았구나 싶다. 끝이라니깐 아쉬운 거겠지만, 그냥 교회 개척하시느라 고생하시던 신목사님 생각이 나서, 더 진심으로 파송 기도해드렸다.

행복한 오늘, 하루의 기억을 뒤로 한채 이제 공부해야지 ㅡ.ㅜ